
감성적인 건축, 취향의 건축
한국 건축가들의 말과 글, 그리고 내가 받은 건축교육에서는 늘 건축물 자체 보다는 건축물 외적인 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지역성' 또는 '역사성'을 어떻게든 끌어내어 건물에 반영하도록 강요했다.
무계획적이고 급속한 현대화로 인해 땅이 잃어버린 장소성을 회복시키는 것이 건축의 역할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러한 건축의 사회적인 역할이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건축의 사회적인 역할에 회의적이고 무관심하다. 주변 컨텍스트에만 집중한 나머지 건물 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치들을 등한시하는 분위기에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건축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감동이나 감성적인 느낌들을 어떻게 하면 건축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주변 컨텍스트나 객관적인 사실들을 주재료로 빚은 건축이 아닌 빛과 재료의 질감, 공간의 느낌을 재료로 하는 감성적인 건축을 만들고싶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건축보다 여기저기 약점이 보이는 개성있는 건축을 만들고싶다.






외부와 분리된 집
창이 없는 콘크리트 담으로 둘러싸인 집이다.
바깥에서의 답답하고 인공적인 첫인상과 달리 현관문을 지나고 통로를 지나 집의 내부로 들어서면 어느새 외부와는 대비되는 자연의 모습이 보인다. 길고 어두운 통로를 걷다보면 출구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통해 콘크리트에서 현무암으로 바뀌는 재료의 변화가 보인다. 통로를 나오면 수공간 위에 떠있는 나무를 마주하게 되고 평범한 높이의 공간은 사라지고 어느샌가 높은 돌벽에 둘러싸인 깊이 있는 공간에 이른다.
잠시동안 감각을 지우는 이 통로는 집의 외부와 내부의 변화를 극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경계선이다.
폐쇄성에 대응
집 내부의 실내외 공간들은 시각적으로 통합되어 하나의 큰 공간처럼 느껴지고 열린 공간이 된다. 집의 중심인 거실은 전면 유리를 통해 남동쪽의 수공간, 남서쪽의 정원을 향해 열려있으며 두 중정을 통해 풍부한 자연광이 유입된다. 이처럼 안방에는 정원이 연결되어있고 개인실에는 개인 중정이, 화장실에는 노천탕이 연결되어있어 집의 거의 모든 공간에서 하늘이 보인다.
방의 구성
개인 공간의 역할을 최소화시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도록 했다. 개인 공간은 폭 3.1m, 길이 4.5m의 작은 크기이며 집에서 가장 깊숙한 개인중정을 면하고 있어 차분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반대로 거실은 3.5m의 높은 실내층고에 부엌이 통합되어있는 커다란 공간으로 TV중심의 공간구성에서 벗어나 여러 활동이 섞일 수 있는 크기의 열린 공간이 된다.